용산역

용산역은 1900년 경인선 보통역으로 출발해, 1906년 경의선 시발역 겸 최대 규모 역사로 성장하고, 일제 강점기 군사·공업 물류의 거점, 수도권 전철·KTX·ITX 시대의 복합 허브로 변모해 온 서울 철도사의 핵심 거점입니다.wikipedia+3

개통과 러일전쟁, 경의선 시발역의 탄생

용산역의 출발점은 1900년 7월 8일입니다. 한강철교 개통과 함께 경인선이 노량진을 넘어 경성까지 연장되면서, 용산에는 3.5평(약 11.5㎡) 남짓의 작은 목조역사가 세워져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합니다. 당시 용산은 한성 도성 남쪽의 변두리이자 일본인 거류지 후보지로 주목받고 있던 지역으로, 가까운 장승배기·노량진 일대와 함께 근대 교통·상업이 스며드는 관문 지역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용산역은 규모가 작고 시설도 초라했지만, 곧 닥칠 러일전쟁과 함께 운명이 크게 바뀝니다.namu+5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한반도를 관통하는 군용철도를 신속히 구축할 필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경부선·경의선이 군사 전략노선으로 급속히 부설됩니다. 원래 대한제국의 경의선 계획은 마포·양화진 쪽에서 출발하는 안이 검토됐지만, 일본군이 용산에 대규모 주둔지를 설치하면서 노선을 용산 기점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 때문에 용산역은 경의선의 시발역으로 격상되고, 1906년 11월 1일에는 2층(일부 3층) 규모의 서양식 목조건물로 된 초대 정식 역사가 준공됩니다. 연면적 약 480평(1,587㎡)에 이르는 이 건물은 1925년 경성역(현 서울역 역사)이 완공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철도역으로, 덕수궁 석조전과 함께 ‘조선 4대 근대 건축물’로 꼽힐 정도였습니다.museum.yongsan+4

군사·공업·철도 거점으로서의 용산

용산역은 단순한 여객역을 넘어 군사·공업·철도 운영의 핵심 기지로 기능했습니다. 1905년 경부선이 전구간 개통되자, 용산에는 ‘육군임시철도감부’와 철도공장이 설치되어 기관차·객차·화차 정비와 제작, 군용철도 운영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됩니다. 1910년에는 한국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선로 상부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용산역에 설치되어, 승객과 철도 종사자가 안전하게 선로를 횡단할 수 있게 됩니다. 1911년에는 용산–의정부 구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용산은 경부선·경의선·경원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 자리 잡습니다.librewiki+5

일제 강점기 동안 용산역 인근은 일본군 사령부와 병영, 군수창이 밀집한 군사 도시로 변모합니다. 역과 인접한 광대한 철도부지에는 차량기지·공장·창고·야드가 들어섰고, 경부선·경의선·경원선을 오가는 병력·군수품 수송 열차가 수시로 지나다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처럼 용산역은 한편으로는 경성 철도망의 중심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군사 지배의 전초기지였고, 그 주변에 형성된 ‘신용산’ 일대는 일본인 거주지와 상업지로 성장했습니다.encykorea.aks+6

다만 도심과의 거리와 군사시설의 존재는 용산역 상업권의 자율적 확장을 제약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보다 도심에 가까운 남대문역(훗날 서울역)을 ‘경성 중앙역’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남대문역–용산역 사이를 연결하는 선로(지금의 경부선 도심 구간)를 정비하면서 여객 중심 기능을 그쪽으로 옮겨갑니다. 그 결과 용산역은 여객보다는 군수·화물·차량정비 기능에 더 특화된 역으로 성격이 굳어졌고, 근대기 서울의 시각적 ‘얼굴’은 점차 경성역(서울역)이 대표하게 됩니다.namu+4

광복 이후, 화물거점·수도권 전철·전철역사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용산역과 주변 군사기지는 미군이 인계받고, 용산은 다시 한 번 미군기지와 철도 관문이 공존하는 공간이 됩니다. 1970년대까지 용산역은 여전히 군수·화물 수송의 비중이 컸고, 여객 측면에서는 경부선 완행열차·통일호 일부가 시·종착하는 역에 가까웠습니다. 1972년 9월 18일에는 용산 화물센터가 준공되어, 각종 일반 화물과 컨테이너가 이곳에서 집하·분류되어 서울 시내와 전국 각지로 운송되는 철도 물류터미널 역할을 강화합니다.museum.yongsan+5

수도권 전철 체계 도입과 함께 용산역의 위상에도 변화가 옵니다.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 1호선 운행이 시작되면서 용산역도 전동차가 정차하는 역이 되고, 1978년 12월 9일에는 용산–성북 간 전동차 운행이 개시되면서 도심–강북을 잇는 통근축의 종점이 됩니다. 승객 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1978년 12월 30일 전철전용역사가 신축·준공되는데, 이 전철역사는 지상 선상 구조로 일반열차 승강장과 분리된 환승·승차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용산역은 ‘군·화물 중심 역’에서 ‘전철 종착역+화물 거점’이라는 이중 성격을 갖게 됩니다.wikipedia+2

민자역사, KTX·ITX, 상업 허브로의 변신

1980년대 이후 급속한 도시 확장과 경제성장 속에서, 노후하고 협소한 역무시설을 현대화하고 역 주변 토지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됩니다. 1984년 「국유자산의 활용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철도 관련 부대사업과 민자역사 사업이 추진되면서, 용산역 역시 민간 자본을 유치한 대규모 상업·교통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프로젝트에 포함됩니다. 2000년대 초 착공된 용산 민자역사는 고가 선상 구조 위에 대형 쇼핑몰, 영화관, 음식점, 오피스와 철도역을 결합하는 형태로 설계되었고, 2004년 2월 29일 현 용산역사가 준공됩니다.mediahub.seoul+3

2004년 고속철도 KTX가 개통된 뒤, 서울역의 수송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호남선·전라선·장항선 KTX와 일반열차의 시·종착역 일부가 용산역으로 이관됩니다. 이로써 용산역은 경부선 본선상 역이면서도, 호남·전라·장항선 열차의 출발·도착역이라는 독특한 위상을 갖게 되었고, 서울 서남부·강북·수도권 서부 지역에서 호남·충청권으로 향하는 관문역 역할을 맡게 됩니다. 2012년부터는 용산–춘천 사이를 잇는 ITX-청춘이 시·종착하면서,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의 거점 기능도 더해집니다.namu+4

동시에 역 상부와 주변에는 대형 쇼핑몰과 오피스, 호텔,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용산역 일대는 ‘용산역세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도시 개발의 중심축이 됩니다. 비록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은 금융위기와 시장 여건 악화로 좌초되었지만, 용산역 일대가 서울 도심과 한강, 남산, 용산공원(옛 미군기지) 사이에 위치한 핵심 입지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소규모 재개발과 복합개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naver+3

오늘의 용산역: 군·화물 기지에서 도시 허브로

현재 용산역은 경부선 여객·수도권 전철 1호선·경의·중앙선(인근 운정·문산 방면)과 더불어, 호남·전라·장항선 KTX 및 일반열차, ITX-청춘의 시·종착역을 겸하는 복합 교통 허브입니다. 철도 차량기지·차량 정비 기능은 일부 이전했지만, 오랫동안 축적된 철도부지와 선로망, 환승체계는 여전히 용산을 서울 철도 시스템의 핵심 노드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주변의 용산 전자상가, 한강로 일대 오피스·주거지, 앞으로 조성될 용산공원과의 연계를 통해, 용산역은 군사·공업 도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주·업무·소비·문화가 교차하는 도시 허브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namu+7

1900년 작은 목조 보통역에서 시작해 러일전쟁의 군용철도 기지, 일제강점기 경성 철도망의 중심, 전후 화물터미널, 수도권 전철 종착역, 그리고 KTX·ITX 시대의 복합 민자역사에 이르기까지, 용산역의 변천사는 한강 남쪽 변두리 군사도시가 21세기 서울의 핵심 거점으로 바뀌어 온 과정을 고스란히 압축해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librewiki+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