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영등포역은 1899년 경인선 공사 과정의 임시역에서 출발해, 1900년 정식 개통과 함께 독립 역으로 승격된 뒤, 경부선 분기역·서울 서남부의 관문·최초 민자역사로 성장한 대표적인 근대 철도역이다.namu+4

탄생 배경과 경인선 시대

영등포역의 뿌리는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노량진–인천 간이 개통될 때 설치된 임시 영업 지점에 있다. 당시 경인선은 한강을 건너지 못한 상태라 ‘노량진역’이 현재 영등포 일대에 위치해 있었고, 이 임시역이 후일 영등포역으로 분화된다. 1900년 7월 한강철교가 준공되고 경성–노량진 구간이 개통되면서 노량진역은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고, 같은 해 9월 5일 이 임시역에 매표소가 설치되며 ‘영등포역’이라는 이름의 정식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 영등포는 서울 도성 남쪽의 교외 농촌·수변 취락에 가까웠지만, 철도 개통과 함께 점차 상공업과 물류가 결집하는 거점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encykorea.aks+8

경인선은 인천항과 서울을 잇는 식민지 수송라인이었고, 영등포역은 이 노선의 중간 거점으로서 화물·여객 모두에 중요했다. 특히 한강 이남에서 생산·집하된 농산물과 공산품이 영등포역을 통해 인천항으로 나가거나 서울로 들어오면서, 역 주변에는 창고·공장·상점 등이 줄줄이 들어섰고, 이것이 훗날 ‘영등포 공업지대’와 상권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opinionnews+4

경부선 분기역과 일제강점기의 변화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영등포는 경인선과 경부선이 만나는 분기점 역할을 맡게 된다. 경부선을 서울 도심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일제는 기존 경인선과 한강철교를 공용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분기 지점이 영등포였기 때문에 이 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크게 상승했다. 1936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등포가 서울에 편입되면서, 영등포역은 ‘서울시의 역’이자 한강 이남 교통·산업의 거점으로 공식 편제된다.librewiki+4

일제강점기에는 역명 변경도 있었다. 1938년 4월 1일 영등포역은 식민지적 색채가 강한 ‘남경성역(南京城驛)’으로 개명되었다가, 1943년 4월 1일 다시 영등포역으로 환원된다. 이 시기 철도는 전시 동원·군수 수송의 핵심 인프라였고, 영등포역은 경부선 상의 주요 정차역으로서 군수 물자와 병력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역 주변에는 경성방직 등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 근대 공업도시 영등포의 풍경이 형성되었고, 오늘날에도 일부 공장 사무동이 근대산업유산으로 남아 있다.wikipedia+4

한국전쟁, 복구, 그리고 산업화기 재건축

한국전쟁 때 영등포 일대는 한강 방어선 전투의 주요 무대였고, 격전과 폭격으로 역사가 파괴되었다. 1950년 전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뒤, 1965년 새로운 역사가 완공되기까지 영등포역은 임시 시설과 부분 복구를 통해 기능을 유지해야 했다.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경부선·경인선 열차 편수가 급증하고, 공장 노동자와 상공인, 상경 인구가 대거 몰리면서 영등포역은 서울 서남부의 대표적인 출입문으로 자리 잡는다.dongjakpangpang+4

초기의 근대적 영등포역사는 1935년 경성토목합자회사 시공으로 본격적인 벽돌 구조로 지어졌고, 전쟁 피해 이후 1965년에 다시 지어진 역사는 보다 규모가 크고 직선형의 현대적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 건물은 특급·무궁화호 등이 정차하는 일반역사로 기능하며 1970년대까지 영등포의 철도 이미지를 대표했다. 1968년 4급역으로 승격될 정도로 열차 운행과 여객·화물 취급량이 많았고, 1971년에는 특급열차의 첫 정차역이 되면서 장거리 간선열차 운행의 핵심 기지 역할을 맡았다.naver+2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전철전용 역사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자, 영등포역도 전철 운행을 시작하며 ‘도시철도+일반철도’ 이중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종로선과 직결 운행이 시작되면서 영등포는 서울 도심과 인천·수도권을 잇는 광역 통근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편입되었고, 통근형 전동차와 장거리 열차가 함께 드나드는 혼합형 대형 역으로 기능했다.encykorea.aks+3

그러나 기존 일반역사만으로는 급증하는 전철 수요를 처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1979년 12월 31일 동쪽 약 300m 지점에 전철전용역사가 따로 건립된다. 이 전철역사는 차량기지 인입선 부지를 활용해 지어졌고, 전동차 전용 승강장과 개집표 시설을 갖춰 일반열차 승강장과 동선을 분리함으로써 승객 흐름과 운행 효율을 개선했다. 이로써 영등포역은 사실상 ‘일반열차 역사+전철 역사’가 병존하는 복합 역 구조를 갖게 된다.namu+2

대한민국 최초 민자역사와 상업 중심지화

영등포역의 또 다른 특징은 ‘최초 민자역사’라는 타이틀이다. 1986년 9월 15일 롯데 영등포역사 주식회사가 설립되고, 1987년 9월 1일 민간 자본을 유치한 신역사 공사가 착공된다. 이 민자역사는 1990~1991년 사이 준공·개관했으며, 지상 대형 상가와 백화점, 영화관 등 복합 상업시설이 철도역과 결합된 형태로 설계되었다. 사업자 설립 기준으로 보면 영등포역 민자역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적인 민자 철도역사로, 이후 용산·수원·동대구 등 여러 대형역 민자 개발의 선례가 된다.namu+3

민자역사 완공 이후 영등포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영등포 상권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역을 중심으로 백화점·대형마트·타임스퀘어 등 대규모 상업시설이 연계되며 ‘서울 서남권 상업 허브’ 이미지를 굳혔다. 역사를 중심으로 버스노선이 방사형으로 집결하고, 인근 도로망과 연결되면서 영등포역 일대는 서울 서남부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opinionnews+4

현대의 영등포역과 교통·도시사적 의미

현재 영등포역은 경부선·수도권 전철 1호선이 함께 정차하는 서울 서남권의 중추역으로, 장거리 일반열차와 광역전철, 일부 KTX·누리로까지 아우르는 복합 여객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KTX 개통 이후 새마을호 전 열차 정차, 2008년 장항선 복선전철화로 서울–신창 간 누리로 운행 시작, 2010년 전철 승강장 스크린도어 설치 등은 영등포역이 여전히 간선 철도망의 주요 노드로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librewiki+3

도시사적으로 보면, 영등포역은 ‘한강 이남 서울’의 형성과 확장을 이끈 인프라였다. 1936년 서울 편입 이후 영등포구가 한때 서울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철도역 주변에 공업·주거·상업이 중첩된 복합도시 구조가 형성되었고, 이는 오늘날 영등포·여의도·문래 일대의 도시 경관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열차를 타고 올라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만나는 서울’이 영등포였다는 표현은, 이 역이 서울의 서남부 관문으로서 어떤 상징성을 지녀왔는지를 잘 드러낸다.naver+3

노량진역의 임시 역사에서 출발해 독립 정차역이 되었고, 경부선 분기역·전철전용역사·민자역사를 거쳐 지금의 복합 상업·교통 허브에 이르기까지, 영등포역의 120여 년은 한국 철도사와 도시화, 산업화, 소비 문화의 변화를 그대로 압축해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namu+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