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서울역은 1900년 ‘남대문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작은 목조 정거장에서 출발해, 1925년 르네상스 양식의 경성역사, 1988년 선상 민자역사, 2004년 KTX 개통을 거치며 120년 넘게 한국 철도와 수도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해 온 상징적인 역입니다.namu+5

남대문정거장 시기와 경부선 개통 초기

서울역의 기원은 경인·경부선 건설이 본격화되던 대한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강철교가 1900년 7월 5일 개통된 뒤, 7월 8일 남대문 밖 염천교 근처 논 가운데에 10평 남짓의 목조 가설 건물이 세워지는데, 이것이 바로 초기의 남대문정거장(경성역)입니다. 당시에는 용산역이 더 크고 군사·물류 중심 기능을 맡았기 때문에, 남대문정거장은 도심에 가까운 보조역 성격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도성 외곽에 처음으로 설치된 철도역이라는 점에서, “철도가 서울 안으로 들어온 사건”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wikipedia+3

1905년 경부선이 전구간 개통되면서 서울–부산을 잇는 간선철도 체계가 완성되자, 남대문정거장의 중요성도 커지기 시작합니다. 경인선이 인천항과 서울을 연결해 대외 교역과 통상로 역할을 했다면, 경부선은 내륙 물류·여객 이동의 대동맥이었고, 남대문정거장은 이 두 축이 만나는 서울 쪽 기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간적으로는 남대문 일대가 철도를 통해 지방과 직접 연결되면서, 서울시민뿐 아니라 상인·관료·유학생·노동자들이 드나드는 도시 관문 이미지가 점차 형성됩니다.encykorea.aks+3

역명 변화와 1925년 ‘경성역사’ 준공

서울역의 역명은 초창기부터 여러 차례 바뀝니다. 1900년 영업 개시 당시에는 경성역 또는 남대문정거장으로 불리다가, 공식적으로 1905년 3월 24일 ‘남대문역’으로 개칭되며 도성 남문과 결부된 지명이 정착합니다. 1915년 10월 15일에는 다시 ‘경성역’으로 환원되는데, 이는 일제가 경성부(서울)의 행정적 위상을 강조하고, 철도역을 식민지 통치 거점의 상징으로 삼으려 했던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kric+3

1920년대 초, 경부선·경의선 등 여러 노선의 종착역 역할을 하던 기존 남대문역사는 이미 여객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에 조선총독부와 철도당국은 도심과 가까운 기존 역 위치는 유지하되, 훨씬 큰 규모의 신역사를 짓는 방침을 정하고 1922년 공사를 시작합니다. 1923년 1월 1일 역명을 공식적으로 경성역으로 바꾸고, 1925년 9월 30일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델로 한 르네상스·바로크 절충 양식의 신 건물이 완공됩니다. 도로 쪽에서 보면 2층, 선로 쪽에서 보면 3층 구조인 이 건물은 당시 동양에서는 도쿄역 다음으로 큰 철도역으로 평가되었고, 붉은 벽돌과 녹색 돔 지붕, 대형 아치형 창 등이 어우러진 화려한 근대 건축물로 주목받았습니다.love.seoul+5

이 1925년 경성역사가 바로 지금 ‘문화역서울 284’로 불리는 옛 서울역 건물입니다. 일제는 이 건물을 통해 경성을 대륙 침략과 식민 통치의 교두보로 상징화했고, 내부에는 대합실·귀빈실·식당·호텔 기능까지 갖춘 종합 교통·상업 공간을 배치했습니다.mediahub.seoul+3

해방 이후, ‘서울역’이 되는 과정과 전후 복구

해방 후 역명에서도 식민지 흔적을 지우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1947년 11월 1일, 경성역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서울역’으로 바뀝니다. 광복과 함께 행정명 ‘경성부’가 ‘서울시’로 바뀐 흐름과 맞물려, 철도역 역시 새로운 수도의 이름을 채택한 것입니다. 1940년대 후반 서울역은 경부선·경의선·경원선을 잇는 사실상 국토 교통의 중심역으로,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과 물자가 모두 거쳐 가는 거점이 됩니다.wikipedia+3

한국전쟁 시기 서울역과 주변은 폭격과 전투로 큰 피해를 입습니다. 교량·선로·시설 일부가 파괴되었고, 역 건물 역시 피난민과 군인이 뒤섞인 혼란의 공간이었습니다. 전쟁 직후에는 응급 복구를 거쳐 기초 기능을 회복했고, 1950년대 후반에는 남부·서부 등 보조역사를 증설해 혼잡을 분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1957년 12월 30일 서울 남부역사가 준공되고, 1969년에는 남부역사가 다시 확장·개보수되는 등, 승객 증가에 대응한 단계적 확장이 진행되었습니다.naver+3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서울역은 ‘상경(上京)의 관문’이라는 상징을 획득합니다. 농어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오는 청년, 입시·취업을 위해 서울을 찾는 수험생과 구직자들이 모두 서울역 광장에 발을 딛는 경험을 공유했고, 이는 한국 대중문화와 문학 속 ‘서울역풍경’ 이미지로도 많이 소비되었습니다.love.seoul+1

지하철 시대, 선상 민자역사, 그리고 KTX 서울역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역은 지하철과 국철이 만나는 환승역이 됩니다. 역 하부에는 지하 집표소·지하도상이 설치되어, 서울역–시청–종로 일대를 지하로 연결하는 도시철도 네트워크가 구축됩니다. 1975년에는 서부역사 신축과 지하도 연결이 완료되면서, 여러 동의 역사와 지하공간·지상 광장이 얽힌 복합적 환승·상업 공간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encykorea.aks+2

19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여객 수요와 도시 이미지 개선 요구가 결합하면서, 민간 자본을 활용한 선상역사(위에 걸친 형태의 역사) 개발이 추진됩니다. 1988년 9월 12일, 서울역 기존 역사와 서부역사를 연결하는 선상 민자역사가 개관하는데, 이는 개관 시점 기준 한국 최초의 민자역사로, 상가·식당·편의시설이 집중된 상업 공간이었습니다. 이 선상역사는 한화그룹 계열사가 운영하며, 역 상부 공간을 상업화함으로써 이후 영등포·용산 등 다른 대형역 민자 개발의 모델이 됩니다.kric+2

1990년대 말에는 고속철도(KTX) 도입이 결정되면서, 기존 시설만으로는 늘어날 수송량과 환승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 2000년 5월 22일 신 민자역사 건립 공사가 착공되고, 약 3년 6개월의 공사 끝에 2003년 11월 새로운 서울역사가 완공됩니다. 이 신역사는 기존 경성역(현 문화역서울284)의 북쪽·서쪽에 대형 유리 파사드와 넓은 대합실을 갖춘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고, 2004년 4월 1일 KTX 개통과 함께 국내 고속철도의 핵심 기점 역할을 맡게 됩니다.namu+3

문화유산 ‘문화역서울 284’와 오늘의 서울역

옛 경성역 건물은 1981년 서울특별시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며, 근대 건축·교통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습니다. 2004년 KTX 신역사 개통 이후에는 일반영업 기능이 축소되고 전시·문화공간으로 활용되다가, 2011년 복원·리모델링을 거쳐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합니다. 이곳에서는 서울·철도·근대 건축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와 공연, 시민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서울역이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기억과 문화의 장소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mediahub.seoul+4

오늘날 서울역은 경부선·호남선·전라선·강릉선 KTX, 일반 열차, 수도권 전철 1호선, 경의·중앙선(경유) 등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최대 철도 허브이자, 인천·김포공항과 연결되는 공항버스와 광역버스까지 집결하는 복합 환승센터로 기능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의 거점, 전후에는 산업화와 상경 신화의 무대, 21세기에는 유라시아 철도망과 연결되는 관문으로 그 역할이 계속 변화해 왔다는 점에서, 서울역의 역사는 곧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kric+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