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은 서울 용산에서 평양·신의주를 거쳐 중국·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간선철도로 계획·건설되었으며, 러일전쟁기 일제가 한반도 종단 철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탄생해 일제 강점기·분단·한국전쟁과 남북관계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노선입니다.wikipedia+3
부설권 경쟁과 착공
경의선 구상은 대한제국 말기 열강의 이권 경쟁 속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1896년 프랑스 회사가 서울–의주 철도 부설권을 얻었지만 자금 조달에 실패해 권리를 상실했고, 1899년 대한철도회사가 다시 특허를 받았다가 역시 무산되면서 사업은 표류합니다. 1900년에는 황실 재정기구인 내장원 산하에 서부철도국이 설치되어 서울–개성 구간의 측량이 시작되지만, 본격적인 공사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실질적 지배권을 쥐면서야 급속히 추진됩니다.encykorea.aks+2
1904년 3월 12일 용산–개성, 4월 개성–평양, 6월 평양–신의주 구간 노반공사가 잇달아 착수되었고, 같은 해 10월 28일에는 용산–임진강 사이에 임시열차가 운행될 정도로 공사가 속전속결로 진행됩니다. 이는 러일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군이 병력·물자 수송용 군용철도를 시급히 필요로 했기 때문으로, 경의선은 애초부터 군사 목적이 강하게 반영된 노선이었습니다.kric+2
개통과 ‘유럽까지 가는 철도’ 구상
1905년 4월 28일, 청천강·대령강 철교를 제외한 용산–신의주 전 구간이 우선 개통되어 연락 운전이 시작됩니다. 1906년 4월 3일 두 철교가 완공되면서 경의선은 전구간 정식 개통 상태가 되었고, 1908년 4월 1일에는 정식 여객 영업이 개시되며 한국 최초의 급행열차 ‘융희호’가 신의주–부산(경부선 직결) 사이를 달리기 시작합니다.wikipedia+2
1911년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자 경의선은 단순히 서울–신의주를 잇는 국내선이 아니라, 압록강을 건너 중국 안동(오늘날 단둥)·만주를 지나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되는 국제 철도망의 일부가 됩니다. 이론상으로는 서울에서 출발해 모스크바·파리·런던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 축이 완성된 셈이었고, 실제로 화물·여객 일부가 만주와 일본을 오가는 국제열차를 통해 이동했습니다. 다만 이 노선은 일본 제국의 대륙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위한 전략 통로라는 성격이 더 강했습니다.namu+3
기점·노선 변화: 용산선과 신촌선
최초 개통 당시 경의선의 기점은 용산역이었고, 용산–효창–공덕–서강–가좌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용산선 구간이 경의선 본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 북부 지방으로 가려면 남대문(서울역)에서 한 번 더 용산까지 내려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일제는 경성 중심부와 바로 연결되는 신선을 계획합니다.namu+2
3·1 운동 이후 도시 확장과 통제 필요성이 커지면서, 남대문역(서울역)에서 신촌을 거쳐 가좌로 가는 노선이 서둘러 건설되어 1921년 7월 21일 개통됩니다. 이 노선은 원래 계획에 없던 선로를 급하게 내느라 선형이 좋지 않고 운전이 까다로운 구간으로 알려졌지만, 경성 도심 접근성이 큰 장점이어서 곧 경의선의 본선으로 격상됩니다. 이후 용산–가좌 구간은 현재까지 용산선으로 분리되어, 화물·입출고·전동차 운행 등에 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wikipedia+1
일제강점기: 북부 간선과 군수라인
경의선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종단하는 양대 간선으로, 일제 강점기 내내 군수·자원·인력을 북으로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평양–신의주 구간은 1943년 복선화가 완료될 정도로 중요도가 높았고, 이는 군수 열차와 만주·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국제열차의 수송 능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또한 1930년대에는 특급열차 ‘히카리호’·‘흥아호’ 등이 투입되어 경성–만주 간 고급 여객 서비스도 제공되었는데, 역시 식민지 엘리트와 일본인 관료·군인을 위한 편의에 가까웠습니다.encykorea.aks+2
분단과 단절, 남북 경의선의 운명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남북을 잇는 열차 운행은 유지되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상황이 급변합니다. 전쟁 초기에 임진강 이북 구간이 전선이 되면서 문산–개성 사이 운행이 중단되고, 군사분계선 설정 후에는 경의선이 남북으로 끊겨 남한 구간(서울–문산–도라산 일대)만 남습니다. 이후 남측 경의선은 사실상 서울–문산을 잇는 국내선으로 축소되어, 장거리 간선보다는 수도권 북부 통근·군사 수송 역할을 주로 맡게 됩니다.encykorea.aks+1
1950~60년대에는 화전역(1958년), 가좌역(1963년), 파주역(1965년) 등이 차례로 개업하며 남측 구간의 역이 정비되었고, 1990년대에는 행신역(1996년), 월롱역(1998년) 등 신설역이 추가됩니다. 그러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요 구간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 막혀 장기간 방치 상태로 남게 됩니다.wikipedia+1
남북 대화와 경의선 연결·복원 사업
1990년대 말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경의선 복원은 남북 경제협력과 상징적 사업의 핵심 의제로 떠오릅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명시했고, 이에 따라 문산–개성 사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encykorea.aks+2
2007년 5월 17일에는 문산–개성 구간 시험 운전이 실시되어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 시범열차가 운행되었고, 같은 해 남북 화물열차가 개성공단 물류를 위해 일부 운행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경의선이 단지 과거의 노선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물류축 재편의 상징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였습니다. 다만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상시 운행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현재도 정기적인 남북 직결 여객 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nkinfo.unikorea+3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으로의 변신
남측 구간에서 경의선은 2000년대 들어 수도권 전철망의 일부로 재편됩니다. 기존 국철선에 전동차를 투입하고, 선로 개량과 전철화를 거치면서 2009년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되어 서울역·용산역–문산을 잇는 광역전철 노선이 됩니다. 이후 중앙선과 직결되어 ‘경의·중앙선’이라는 통합 계통으로 운행되면서, 문산–용산–청량리·지평까지 이어지는 동서 통근축을 형성합니다.namu+1
이 과정에서 가좌–공덕–용산·서울역을 잇는 도심 구간에 복수의 노선·선로가 중첩되었고, 일부 구간은 지하화·입체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도시 구조와 교통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경의선이라는 이름은 한편으로는 남북을 잇는 역사적 간선철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 통근 전철 노선을 동시에 가리키는 이중적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paju+3
경의선이 지닌 의미
경의선의 역사는 제국주의 열강의 이권 경쟁, 러일전쟁과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남북 화해 시도의 굴곡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한때는 부산에서 신의주를 넘어 만주·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망의 일부였고, 또 한때는 문산까지 끊긴 ‘막다른 노선’으로 축소되었으며, 최근에는 다시 남북경제협력과 유라시아 철도 구상의 상징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으로 서울 시민의 일상적인 통근을 돕는 노선이 된 뒤에도, 선로가 이어지는 북쪽 끝 도라산·임진강 일대는 여전히 “더 이어져야 할 철도”라는 기억과 기대를 함께 안고 있는 공간입니다.molit+7